대작 영화의 원톱 주연으로 나서는 건 결코 적지 않은 부담감을 요구한다. 작품을 향한 평가와 흥행 여부를 오로지 주연 배우가 감내해야 한다. 작품이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고귀한 독립운동가를 다룬다면 더욱 그렇다.
배우 현빈이 가지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연말 극장가를 책임지고 있는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작품이다. 제작비는 3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주연 배우로서 숱한 작품이 흥행했지만 ‘하얼빈’은 현빈에게 남다르게 다가올 터. 지금도 부담감을 극복하진 못했다. 그러나 현빈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작품이 주는 시사점을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작품 속 안중근 의사가 “까레아 우라”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19일 만난 현빈은 “안중근 장군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서 이 분의 행동이나 말씀, 글귀들을 남기기 전까지 어떤 생각들이 있었을까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감독님도 그런 것들을 영화에 보여주시기를 원하셨고 그게 목표였다”며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상상해서 만들어내야 되는 작업이다 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계속 생각과 상상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극 중 배경이 독립운동을 하기 척박했던 만주, 연해주 등의 지역인 만큼 영화는 3개국 로케이션을 통해 생생한 대자연을 담았다. 이로 인한 압도적 영상미는 작품의 큰 장점이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법 하다. 그러나 현빈은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었던 것 같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너무 힘들었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신체적으로는 그렇게 안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서 그런지 몸이 힘든 건 잊고 있었던 시기였다. 압박감이나 무게감도 그랬고 많이 괴롭고 힘들었던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현빈은 “끝날 때까지 못 떨쳐냈다. 지금도 못 떨쳐내고 있다”고 웃었다. 앞서 열린 시사회에 안중근의사기념관 측이 참석한 사실을 언급하며 현빈은 “무대 인사를 하는데 ‘이 관이 저한테 제일 무서운 관’이라고 했다. 그분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그 안중근 장군에 대해서 생각하고 뭔가를 계속 만드시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굉장히 궁금하더라”라고 전했다.
현빈이 생각하는 안중근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지금까지도 해답을 못 찾았다”고 답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그분의 생각에가까이 가고 싶어서 최대한 노력했지만 ‘어떻게 그 나이대에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시고 본인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범주에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경외감을 내비쳤다.
현빈이 그린 안중근 의사는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동지들을 잃은 것에 괴로워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고민한다. 현빈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르러 가는 중에 인간으로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리고 신아산 전투 이후 동지들과 균열이 발생했을 때 본인의 선택과 결정에 후회가 단 한 번도 없으셨을까. 미안함 같은 건 없었을까. 이런 것들로 시작이 됐던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그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했다”며 촬영을 진행하던 중 이러한 고민 끝에 수정된 장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의거를 치르기 전 동지들이 희생하자 최재형(유재명)은 안가에서 거사를 미루자고 제안하지만 안중근은 괴로워하면서도 거사를 절대 미루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빈은 “어두운 구석에 쭈그려서 앉아 있는데 원래는 그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현빈은 “원래는 의자에 앉아서 최재형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촬영하러 세트장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을 처음 보고 ‘안 보이게끔 완전히 웅크려 있는 모습 자체가 안중근의 또다른 모습이나 감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드리고 수정을 했다. 그런 신들의 연속이었다. 공간 안에 들어가서 리허설을 하면서 찾아내고 ‘뭐가 더 나을까’ 어떤 게 나을까 계속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대립을 이어가던 이창섭(이동욱)이 식탁에 마주 앉은 안중근에게 술잔을 권하는 장면도 우민호 감독이 현장에서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현빈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신인데 감독님께서 전날 밤에 생각하시고 오전에 대사와 상황들을 주셨다. 이런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리허설 한두 번 하고 바로 슛을 들어갔다”며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두 사람이 크게 표출은 안 하지만 서로 뭔가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라고 부연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장면. 막상 영화 속에서는 의거 장면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 흔한 클로즈업도 없다. 현빈은 “애초에 처음부터 안중근의 클로즈업이 없었다. 많은 분들이 이토 히로부미나 안중근의 얼굴 같은 그림을 상상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저희는 애초에 그걸 배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감샷이 마지막이 되고 오히려 그 ‘까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라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외쳐서 다른 걸 표현했다. 저는 좋다. 이게 만약 관객들이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추가적인 샷들이 필요했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우린 시원한 한 방을 얘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실제로 거사를 치르고 35년 후에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인 ‘까레아 우라’를 두고는 “공부인(전여빈)한테 ‘대한독립 만세’가 뭐냐고 물어본 순간부터 ‘까레아 우라’ 함성이 끝날 때까지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목이 찢어져도 최대한 많이 퍼져 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길. 안중근의 얼굴보다 까레아 우라 한 마디, 그 목소리가 더 잔상이 남길 원하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현실의 대한민국이 계엄과 탄핵 정국을 맞으면서 영화가 주는 울림이 국민에게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의 대사와 더불어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라는 안중근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특히 화제를 모았다.
현빈은 “저희의 최초의 목표는 시원한 한 방이나 시원한 결과보다는 독립군들의 여정과 길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거사를 함으로써 독립이 되고 우리는 이제 살 만한 세상이 됐다는 게 아니라 이게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영화”라며 “관객들이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지막 내레이션도 그렇고 이걸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는 또 계속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된다는 것들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끝으로 현빈은 대작 영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없냐는 물음에 “부담이 있다. 여러가지로 크다”며 “저한테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 크고 지금 영화 시장에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아오시게끔 하는 바람도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대작이다 보니 앞에 보여지는 사람들이 아닌 뒤에서 고생하신 분들이나 투자하신 분들에 대한 실망도 안 시켜드리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래서 저도 이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부담이 큰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 나머지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하늘에서 도와주셔야 되니까”라고 묵묵하게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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